33.GONY

 




육식 33.TABLE

"자기야 나 이제 퇴근해. 집에 먹을 거 있어?", "없어.", "없어? 전에 엄마가 집에 두고 간 소고기 있지 않아?", "아, 맞다. 그거 있어.", "그럼 그거 지금 냉장고에서 꺼내놔 저녁에 고기나 구워 먹자.", "알겠어. 빨리 와."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얼렁뚱땅 직원들에게 퇴근 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는 왜 하필 지하 3층에 있는가? 5분을 기다려서야 겨우 엘리베이터를 탔다. 같이 탄 직원들은 저녁 먹고 다시 들어와 일을 한단다. 먼저 집에 가는 사람이 미안한 감정이 드는 개떡같은 상황이 잠시 짜증 났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이프와 소고기를 생각하며 싱글 웃는다. 다행히 주택가에 몰래 주차한 출퇴근 머신은 그대로 있다. 딱지도 안 붙었다. 아싸! 뒷좌석에 가방을 던져놓고 운전대를 잡는다. 라디오를 들을까 하다가 CD를 돌린다. HIPHOP!

오늘따라 퇴근길 상태가 좋다. 롯데 사거리에서 신호등 한 번 걸리고는 브레이크 한 번 못 밟아보고 강변북로를 나온다. 한강과 집이 가까운 건 축복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좋은 주차 자리가 많은지. 우리 동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명당자리가 비었다. 심지어 그 자리는 나무도 없어서 새똥도 피해 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파킹 랏이다. 오늘 저녁 확실히 뭔가 될 날이다. 삐. 삐. 삐. 삐 딩동댕~ "여보~ 나 왔어." 이 순간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하다. 세상에 엉덩이를 흔들며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다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고기는?" 옷도 갈아입기 전에 고기부터 확인한다. 아오~ 퇴근 직후부터 집에 들어올 때까지 곂곂이 쌓였던 기대와 행복이 한순간에 깡그리 무너진다. 한우라는 이름표가 무색한 마블링에 어찌나 얇게 썰었는지 답이 안 나오는 상태다. 그래도 냉장고에서 나와 30분 가까이 프라이팬을 기다린 고기를 어찌 다시 냉장고에 넣을 수 있으랴. 연중행사인 소고기를 먹기 위해 순결하게 버텨온 위장을 어찌 배신할 수 있으랴. 어떻게든 맛있게 먹기 위해서 짱구를 굴려본다.

버터와 마늘을 준비한다. 팔 운동용 주물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다. 팬에서 연기가 나고 이거 너무 달군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달군다. 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팬에 올린다. 마늘을 셰프처럼 손으로 뭉개고 버터와 함께 팬에 올린다. 이쯤 되면 한쪽 면이 잘 익었을 터 고기를 뒤집는다. 녹은 버터를 셰프처럼 수저로 떠서 고기 위에 끼얹는다. 이러고 있으니 뭔가 셰프가 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집안 가득 연기를 보니 심란하다. 그러는 사이 고기가 다 익었다. 그릇에 옮긴다. 고기의 향과 육즙과 기름이 가득한 팬에 버섯과 양파를 굽는다. 고기 구운 팬은 그 자체로 엄청난 조미료 역할을 한다. "여보, 요리 다 됐어. 먹자."

고기는 예상대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고기 덕분에 퇴근시간이 즐겁고 요리하는 시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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