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GONY

 




제주도 여행, 첫날 EXPERIENCE

다른 사람들은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흥분해서 여행 떠나기 전에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고 무엇을 타고 무엇을 보는 지를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체크하고 예약하는데 열을 올리고 거기서 오는 기쁨도 여행에서 얻는 기쁨 못지 않다고 하지만 난 아무래도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제주도로 떠나기 이틀 전 까지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만약 간다면 식구들과 여행을 하고 혼자 남게 된 친구와 중문에서 파도를 타고 있는 친구를 만나고 한라산에나 올라야겠다는 정도의 계획만 세웠다. 그리고는 떠났다. 
출발. 공항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공항의 카페는 더더욱 매력이 있는데 다행이 김포공항에는 만만한 스타벅스가 있어서 좋다. 밖에 앉아서 공항 때문에 낮은 스카이라인을 구경하고 떠남에 흥분되어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느끼고 있으니까 나도 덩달아 흥분된다. 어렸을 때는 집 밖을 나설 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내 마음에 드는 브랜드로 도배하는 것이 의식과도 같았는데 좀 컸는지 엄마의 EXR 배낭도 아무렇지 않게 매고 나왔다. 무려 EXR!
도착. 누가 제주도 아니라고 할 까봐 공항의 버스 타는 곳 앞에 떡 하니 이런 나무들이 서있다. 누가 여행객 아니라고 할 까봐 카메라를 꺼내서 셔터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12년 만인가? 11년 만인가? 아무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 그 때는 돈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여행을 했었는데(중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자전거 반납하고 시외버스 타고 민박을 하긴 했지만) 서른 두 살이 되어도 별반 다를 거 없는 걸 보면 뭔가 소나무 같기도 하고 불쌍한 것 같기도 하다.
식후경. 시외버스를 확인하고 출출하여 간단하게 치맥. 근데 편의점에서 맥주 먹을 때는 저 닭 다리보다 소시지나 치즈 스틱이 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먹기 불편한데 심지어 맛 없다. 여행지에서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건 마시고 싶어서 보단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또 참 맛있단 말이지... 이게 여행의 묘미다. 여행은 일상적이고 뻔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낸다. 그 특별함은 추억이 되어 작은 웃음을 만들거나 빡세게는 삶을 지탱하기도 한다. 떠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여행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외버스. 여행지의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뻔하지 않은 것들에 감탄하는 일도 재미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처녀, 총각, 학생, 어린이들의 표정과 말투와 대화와 스타일과 냄새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시외버스 노선이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버스는 시원했고 바깥으로 보이는 바다와 돌과 구름과 생경한 마을의 모습이 호기심을 살살 긁고 있었다. 제주도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성산항. 일부러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항구는 여행하기에는 좀 무서운 곳이었다. 배들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줄에 묶여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배 위에서는 마도로스들이 담배를 피며 사진기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담고 있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웃음이 없어서 더 무서웠다. 그래도 배는 타고 싶었다. 멀리 배를 타고 나가서 무지하게 큰 물고기로 배를 가득 채워 항구로 돌아와 두툼한 돈뭉치를 쥐고 선장과 시크하게 인사를 하고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해봤다. 
바다낚시. RAWROW의 의현이를 성산항에서 만났다. 많은 가족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여행을 와서 모든 돈을 내고 운전을 하고 수고를 했다는 녀석이 얼마나 멋지던지... 자기 돈도 모자라서 부모한테 손 벌려 해외로 나가는 녀석들도 많은데 처음 한 여행을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한다는 좀 개념 종자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했던 바다 낚시는 그렇게 개념 있지는 않았다. 상상하던 배는 아니었고 대한민국의 관광 수준을 보여주는 서비스와 인프라, 가격의 퀄리티였다. 
낚시왕. 그래도 낚았다. 허접해도 낚으니까 기분이 좋다. 바다 위에서 밤을 맞이하는 것도 행복하다. 옆에서 의현이가 좋다, 좋다 그러니까 더 좋은 것 같다. 역시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건 좋다. 아~ 좋다. 
전갱이. 괜히 낚시 왕이라고 한 게 아니다. 무려 7마리를 낚았다. 옆에서 같은 낚시 대를 던진 녀석은 한 마리 낚았다. 바다 낚시는 처음이었는데 꼼수 부리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계속 걸렸다. 뭐든 원칙과 기본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특히, 낚시처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언제 결과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에서는 더 중요하다. 내 맘대로 했을 때, 한 마리도 못 낚았다면 내 탓이지만 원칙대로 했을 때 한 마리도 못 낚은 건 내 탓이 아니다. 이후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진짜 배. 단 5분을 타도 배는 배다. 등대를 보고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뭍으로 다가가는 배를 보며 나도 등대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막차. 중문에서 서퍼들과 유니온 스탭들이 한껏 놀고 있다고 빨리 오라는 규혁이의 전화에 매우 신이 났지만 버스가 끊겼다. 성산에서 잘까 하다가 콜 택시를 불러서 중문으로 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요금 정도 나온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규혁이가 있었고 중문에서 파도를 타는 한국의 몇 안되는 서퍼들이 반겨주었고 먹을 것도 잔뜩 있었다. 깜깜한 새벽에 바다에 들어가 미친놈들처럼 놀았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나눠 마시고 남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졌다. 여행이구나...

덧글

  • 고선생 2012/08/18 03:34 # 답글

    고백하지만 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낚시를 해본적이 없네요. 저런 경험 부럽습니다..:) ㅎㅎ 낚시왕!
  • Gony 2012/08/24 00:46 #

    ㅎㅎ 고슨상님 만날 료리연구(읭?)만 하지 마시고 고기던 사람이던 함 낚아 보아요~
  • ShwanRitter 2012/08/18 10:05 # 삭제 답글

    좋다~
    여기저기 다니긴 했어도 나도 정작 그렇게 혼자 여행해본 적은 없는데.. 좋다 좋아~
  • Gony 2012/08/24 00:48 #

    ㅎㅎ 횽도 혼자 여행해봐요. 진짜 좋아요.
  • 오리지날U 2012/08/18 15:40 # 답글

    저 닭다리는 싼 값에 즐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지만 먹기가 매우 거시기 하지 말입니다?
    혹시 또 드시게 된다면 직원에게 포크 두 개를 달라고 하여 발라먹으면 손에 묻지도 않고 훨씬 편합니다? ㅋㅋ
  • Gony 2012/08/24 00:48 #

    오! 그런 방법이!!! 저는 뜨거워서 만날 휴지로 둘둘둘 감았는데요. 기름 질질질...
  • 기억 2012/08/20 16:13 # 답글

    진정한 여행..!~ 느낌 좋아요~^^
  • Gony 2012/08/24 00:49 #

    ㅎㅎ 저도 지금 다시 보면서 역테러 당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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